이달 4일 송영길 인천시장 방에 한 외국 기업인이 방문했다. 미국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사의 스티븐 타이트 사장(국제개발 담당)이 영종도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영종도 투자유치 올인

미국 등 7개국에서 53개의 카지노 리조트를 운영하는 시저스는 중국계 자본인 리포그룹과 손잡고 지난 1월 말 영종도에 카지노 사업을 위한 사전심사를 신청해 둔 상태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사가 시작되면서 국내외 언론에 ‘특혜설’ 또는 ‘먹튀설’ 등이 거론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급거 송 시장에게 SOS를 요청한 것이다. 2년 가까이 영종도 카지노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송 시장은 곧바로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에게 “영종도의 시저스 프로젝트가 좌절되면 우리 젊은이 5500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송 시장은 대표적인 486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고교 때 광주민주화항쟁을 목도한 그는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레닌의 『시토젤라치(무엇을 할 것인가)』나 『러시아 혁명사』를 읽으며 혁명을 꿈꾸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하기 위해 중장비 면허를 따기도 했다. 1991년 모스크바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동상이 무너져 내린 현장을 본 뒤 사법시험에 도전한 것도 노동자들의 보다 실질적인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마카오나 라스베이거스 버금가는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인천에 짓겠다고 나섰다. 과거 운동권 시절이라면 ‘자본주의의 독버섯’이라며 맹공격을 퍼부었을 카지노를 유치하기 위해 머리띠 둘러매고 앞장을 선 형국이다. 송 시장은 2010년 7월 취임 직후부터 미국·일본·러시아·중동 등으로 투자 유치 출장을 다녔다. 세계 카지노 업계의 거물들과도 서슴없이 어깨동무를 했다. 투자자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자 아랍어에 러시아어까지 외국어 공부도 했다.
특혜설 돌자 “일자리 5500개 걸렸다”

국내 업계 “허가 내주지 말라” 반발
실제 일본의 한 카지노 업체가 지난해 베이징에서 시장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영종도에 카지노가 있으면 마카오보다는 인천으로 가겠다”고 답변했다. ‘도덕국가’라 불리던 싱가포르도 2010년 마리나 베이와 센토사 섬에 카지노 리조트를 열어 단숨에 관광대국으로 성장했는데 인천이라고 카지노와 담을 쌓아야 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게 ‘송영길식 실사구시’론이다.
걸림돌이던 카지노 사업에 대한 규제도 지난해 9월부터 완화됐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의 경우 ‘외화직접투자(FDI) 5000만 달러’ 등의 요건을 갖추면 사전심사를 통해 본허가 이전에 사업 추진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시저스-리포 합작사인 LOCZ와 일본의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 등 두 곳이 사전심사를 신청했다. 유니버설은 4조5000억원을, LOCZ는 8만9000㎡에 2조2470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인천경제청은 이들 사업이 완료되면 5만 명의 직접고용 효과와 연간 3조원 이상의 관광수입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게 송 시장의 뜻대로 순탄하게 풀리고 있는 건 아니다. 기존 카지노 업계의 저지 움직임으로 이상 기류가 나타난 것이다. 기존 업계는 “처음에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설립한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내국인의 출입도 허용하게 해 달라고 강력 요구해 올 것이 뻔한데 허가를 내 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카지노협회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 외국 업체의 투자에 반대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최근에는 이종철 인천경제청장이 미국 방문 때 카지노 투자업체로부터 수백만원의 호텔비를 제공받았다는 음해성 소문까지 퍼져 이 청장이 영수증을 제시하며 해명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문화부 “공정 심사” 외치지만 곤혹
허가권을 가진 문화부는 카지노 산업 확대에 대한 국민 정서와 기존 업계의 입장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문화부 정현욱 사무관은 “사전심사제를 재검토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내에서 나오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관련 규정과 여론을 고려해 공정하고 엄격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겹치면서 문화부의 심사는 늦춰지고 있다. 그럴수록 송 시장은 속이 탄다. 그는 “중앙정부에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외국 자본을 들여와 일자리를 만들려는 것인데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